차트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차트는 신이었고 차트만 알면 무조건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했다.
컵앤핸들 패턴이 유독 '그럴듯해' 보였다.
둥글게 바닥을 다지고, 살짝 눌렸다가, 돌파. 스토리가 있어서 외우기도 쉬웠다.
실제로도 몇번 차트가 맞아 신기해했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 차트에서 찾으려고 하니까 바로 문제가 생겼다. 컵이 얼마나 둥글어야 확실한 컵이고 핸들이 얼마나 짧아야 핸들인지 그것의 기준이 전부 내 주관이었다. 내가 보이는데로 보고싶은데로 보이는 차트. 네이버 주간 차트를 펼쳐놓고 30분을 봤는데 컵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차트가 어렵다..
패턴은 사후에 더 잘 보인다
이게 내가 느낀 가장 큰 함정이었다. 이미 돌파가 끝난 차트를 보면 '아, 여기가 컵앤핸들이었네' 싶다. 그런데 오른쪽 끝이 지금인 차트 앞에서는 훨씬 불분명하다. 패턴 인식 능력이 느는 건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은 걸 보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사후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차트 책에 나오는 예시는 늘 깨끗하다. 컵이 둥글고 핸들이 적당히 짧고 거래량까지 친절하게 받쳐준다. 그런데 그 차트들은 전부 결과가 나온 뒤에 골라낸 차트다. 실제 매매 시점에서 보는 차트는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컵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거나 핸들이 너무 길어 보이거나 거래량이 영 시원치 않거나. 그래서 책대로 매수하려고 하면 늘 한 박자 늦거나 헛짚는다.
패턴보다 먼저 봐야 하는 것들
요즘은 패턴을 찾기 전에 두 가지를 먼저 본다. 첫째는 큰 추세다. 주봉이나 월봉으로 봤을 때 위로 올라가는 구간인지, 옆으로 횡보하는 구간인지를 확인한다. 추세에 역행하는 패턴은 성공률이 확실히 떨어진다는 걸 몇 번 데이고 알았다. 둘째는 거래량이다. 컵 바닥에서 거래량이 줄어들고 핸들에서 한 번 더 줄었다가 돌파 시점에 폭증해야 진짜 패턴이라는 게 교과서적인 설명인데, 거래량이 안 받쳐주는 패턴은 가짜인 경우가 많았다.
이 두 가지만 필터로 걸어도 후보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매매 횟수가 줄어드는 건 부담스럽지만 차트 패턴 학습을 진행할수록 '안 사는 게 이기는 매매'라는 말이 점점 무겁게 다가온다.
그래도 연습은 계속하고 있다
요즘은 SK하이닉스 일봉 차트를 매일 저장해두고 있다. 3개월 후에 돌아봤을 때 내가 패턴이라고 생각했던 구간이 실제로 의미가 있었는지 확인해볼 생각이다. 틀려도 괜찮다. 틀린 이유를 알면 되니까. 어쩌면 나의 공부가 쌓이고 쌓여서 나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래 쌓인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확률적으로 좀 더 높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은 곳에 투자하자.
차트는 신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차트는 도구일 뿐이고 도구를 잘 쓰려면 한계도 알아야 한다. 컵앤핸들이 보일 때마다 사는 게 아니라, 컵앤핸들 같아 보이는 차트를 만났을 때 '여기서 내가 틀렸다면 어디서 손절할 건가'를 먼저 정한다. 손절 가격이 명확하지 않으면 매매 자체를 안 한다. 이 한 줄짜리 규칙이 작년보다 올해 손실을 많이 줄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