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에 자꾸 눈이 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싸 보였기 때문이다. PER도 낮고, PBR도 낮고, 배당수익률도 꽤 됐다. 그런데 부채비율 가이드를 읽고 나서 내가 놓친 게 뭔지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눈여겨보던 한 종목의 부채비율이 230%였다. 업종 평균은 90% 수준이었는데, 나는 "이 업종은 원래 부채가 많다"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설득이 아니라 합리화였다.
숫자보다 이야기를 먼저 믿었다
그 기업은 리포트마다 "구조조정 마무리 단계"라는 문구가 나왔다. 나는 그 문구를 믿었다. 부채비율 230%라는 숫자보다 '마무리 단계'라는 단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이게 투자의 묘한 심리다. 숫자는 차갑고, 이야기는 따뜻하니까.
결국 그 종목을 담았다가 8개월 만에 -21%로 손절했다. 구조조정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이자비용이 영업이익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헷갈리는 것
그렇다고 부채비율 높은 기업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결론은 아직 내리지 못했다. 업종마다 다르고, 타이밍마다 다르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다만 내가 그 종목을 담을 때 '업종 특성'을 이유로 댔는지, 진짜로 이해했기 때문인지는 구분이 필요했다. 솔직히 그때 나는 전자였다.
이걸 읽는 사람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 같다. 숫자를 보고도 왜 그냥 넘어갔는지, 그 이유가 뭔지.